율곡(栗谷)의 '대통령감별법'
율곡(栗谷)의 '대통령감별법'
  • The Assembly
  • 승인 2021.09.1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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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학자이자 경세가(經世家)인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의 붓끝은 매섭다.

조선의 임금은 물론이고 중국 역대 황제들도 그의 붓 아래에선 온전한 이가 거의 없었다. 중국에선 정사에 기록은 없지만 최고의 태평성대로 꼽히는 요순(堯舜)시대를 이끌었던 요()임금과 순()임금만이 성군(聖君)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조선의 세종만이 이 반열에 든다. 여기에는 끼지 못했지만 명군(明君)으로 일컬어질 임금들도 가물에 콩 나듯이 간간이 눈에 띈다. 그 나머지는 하나같이 폭군이 아니면 어둡거나 용렬한 군주였다. 말하자면 제각기 1만 년을 헤아리는 두 나라의 기나긴 역사에서 성군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율곡의 군주론은 이처럼 엄혹하리 만큼 냉정하다.

4백여 년 전 이 땅에 왔다 간 현인(賢人) 율곡을 이 시점에 다시 등장시킨 이유는 간단하다. 지리멸렬한 오늘의 한국 정치를 수렁에서 건져낼 '성군', 아니 '명군'을 가려낼 지혜를 국민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절박함에서다. 성군은 이제 이상일 뿐, 화석(化石)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명군만 나와도 감지덕지다. 왕조시대의 낡은 군주론으로 다원화된 세상의 복잡다단한 난제들을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는 접어둬도 된다. 시대가 변하고 이념과 체제는 달라졌어도 사람의 지혜는 크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성을 상실한 채 '대뇌위축증'을 앓고 있는 오늘날의 병든 인류에게 훨씬 더 근본적이고 명쾌한 처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실례를 하나 들어보자. 군주의 자격과 요체에 관해 우리 선조들이 한 목소리로 주장한 것은 각각 세 가지다. 백성을 사랑하며 구제하고(), 선과 악을 밝게 분별하며(), 소인배들을 배척하고 멀리하라()는 것이 군주가 가져야 할 자격요건이다. 군주가 행할 정치의 요체는 어질고 유능한 적임자를 뽑아 일을 맡기고(委人), 정직하고 충성스런 신하의 간언을 따르며(從諫), 일 잘하는 신하는 상을 주고, 잘못을 저지른 신하에겐 벌을 주라(賞罰)는 것이다.

이것은 옛날 임금이나 오늘날의 국정 최고책임자에게도 똑같이 요구되는 기본적인 덕목이다. 또한 명군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 율곡의 군주론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보다 구체적이고 명시적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반 년 앞으로 다가왔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국민들은 이번에야말로 눈 밝고 귀 밝은 대통령을 뽑아야겠다고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 이런 열망을 반영이라도 하듯, 요즘 정치판은 너도 나도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 등으로 국민들의 눈에는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후보가 아직은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연애할 땐 마냥 즐겁기만 하더니만, 막상 결혼하려고 하니 전에는 미처 몰랐던 상대방의 흠결도 자꾸 보이고, 이것저것 조건도 따져봐야 하는 형편과 다를 게 없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국민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선두권 후보 중에 어떤 후보는 예상 밖으로 무식해 보여 실망스럽고, 또 다른 후보는 너무 영악하고 교활해서 질린다는 식이다. 역사의 경험칙상 좀 무식한 건 훌륭한 보좌진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지만, 영악스러운데다 교활하기까지 하면 코드가 간신들과 딱 맞아서 나라를 결단내기 십상이라고 한다.

옛날에 중국 양()나라 원제(元帝)1만 권의 책을 읽었을 정도로 박식했지만, 결국 위()나라의 포로가 됐고, ()나라 환제(桓帝)는 환관들의 참소만 믿다가 나라를 결딴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여전히 미심쩍어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이럴 땐 어떻게 최선의 후보를 골라야 하나?

과거시험에서 아홉 번이나 장원을 했던 조선 최고의 천재 율곡은 그 기준으로 각각 잘하는 정치와 어지러운 정치 등 두 가지 행태를 제시했다.

먼저 잘하는 정치다. 군주가 재능과 지혜가 남달리 뛰어나 호걸들을 잘 부리는 것과, 재능과 지혜는 비록 부족하더라도 어질고 유능한 이에게 일을 맡기는 경우다. 반면에 임금이 자신의 총명만을 믿고 신하를 믿지 않거나, 간신들의 말만을 믿어 임금의 눈과 귀가 가려지면 정치가 문란해진다고 했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후보들을 대상으로 이 기준을 적용해 보더라도 어느 정도 선택의 윤곽은 그려진다. 적어도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국민을 억압하는 폭압적인 대통령과 지혜롭지 못하고 무능해서 망조가 드는 어두운 대통령, 그리고 어리석고 나약하며 과단성이 없어서 어물어물하다가 임기를 마치는 용렬한 대통령을 뽑는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서 율곡은 이중삼중으로 실례를 들어가며 자세하게 군주론을 설파했다. 여기 다 나열할 순 없지만, 이를 대통령의 자질에 빗대어 말하면, 그 주요 요지는 이렇다.

"적어도 대통령을 하려는 자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뇌하며 사색하면서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가고 이를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으라. 생각을 진실하게 하고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며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라. 이 바탕 위에서 뜻을 세우고, 뜻을 세웠으면 힘써 행하라."

이런 자질을 가진 대통령이라면, 우리 사회의 실종된 윤리도덕과 국민교육, 국가의 정체성과 국민정신을 바로세울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어 우리 사회의 정의와 공정을 확립하고 갈라진 국론을 끌어 모아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국민 행복을 증진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훌륭한 나라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이 기준에 합당할까? 판단은 국민 몫이다. 예로부터 '하늘은 한 시대의 인재를 낳아 그 시대의 일을 끝낸다(天生一代之才,了一代之事)'고 했다.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찾는다면, 그에 합당한 후보는 나타나게 돼 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지 않던가.

 

*구 범 회 (전 연합뉴스 초대 북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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