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는 ’섬‘이 아니다
미얀마는 ’섬‘이 아니다
  • The Assembly
  • 승인 2021.03.0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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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누구든 그 자체로서 / 온전한 섬은 아니다 / 모든 사람은 대지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다 /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리면 / 유럽 땅은 그만큼 작아질 것이며 / 모래펄이 그렇더라도 마찬가지다 /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 영지가 그렇게 되어도 마찬가지다 /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 내가 인류 속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이를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 존 던(1572-1631) 시「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전문

스페인 내전(1936-1939)은 안으로는 자유와 평등을 위한 혁명이었고, 밖으로는 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세기적인 전쟁이었다. 앙드레 말로(1901-1976)나 조지 오웰(1903-1950) 같은 전 세계 지식인들이 ’국제여단‘ 소속으로 싸움터를 찾아갔고, 내란을 배경으로 작품을 남겼다. 그 결과 피카소(1881-1973)는 대작「게르니카」를 그렸고,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존 던의 시와 같은 제목으로 장편소설을 썼다. 예술가들을 포함 전 세계 5만여 명의 자발적 전사들이 프랑코 파시스트 군부에 저항한 것이다. 짜장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은 울리는 것인가!

조지 오웰은 장편소설『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이렇게 확신한다. “인간을 압제하는 모든 형태”를 타파하는데 앞장선,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희생양“들을 위한 타종이다. 그런 태도를 지니지 못한 자를 위한 조종은 울리지 않으며, 진혼곡이나 장송곡 그 레퀴엠도 당연히 연주되지 않는다. 스페인의 북부 카탈로니아 출신인 파블로 카잘스(1876-1973)는 군부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전란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1961년 11월 13일 케네디대통령 초청으로 열린 백악관연주회 실황을「새의 노래」에 남겼다. 인본주의 첼리스트 카잘스는 자신은 언제나 ’평화‘를 노래하는 새처럼 연주한다고 밝혔다. P-e-a-c-e...

우리들 인간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단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해 온 것이 사실이라면, 아득한 옛 선조들의 사회개혁을 위한 용기는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의당 있을 것이다.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은 다시 새로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맹목적인 미신이 우리들 앞뒤에다 자리잡게 했던 황금시대는 바로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이다.> 인류의 박애정신이란, 가장 빈곤한 부족사회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재확인하고, 또 우리 사회가 겪은 수많은 경험에다가 덧붙여서, 이 빈곤한 부족사회의 경험을 교훈으로 소화시킬 수가 있을 때 비로소 그 진정한 뜻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레비스트로스.『슬픈 열대』. 제9부 귀로歸路

1935년- 27세의 레비스트로스는 브라질 상파울루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그는 주말과 방학에 밀림의 원주민 카투베오족과 보로로족의 사회를 연구하고 논문을 발표했다. 3년 뒤에는 아예 대학을 사직하고, 1년간 브라질의 북서부 남비콰라와 카와히브족을 조사하고 조국 프랑스로 귀국했다. 이듬해인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군 통역장교로 참전했으나 유대계여서 마르세이유에서 탈출, 미국으로 망명해 본격적으로 문화인류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레비스트로스(1908-2009)는 22년 뒤 이 여정을『슬픈 열대』를 통해 회고했다.

브라질의 고립된 인디언 사이에서 5년에 걸쳐 현장 작업에 몰두한 끝에 그는 자신이 ‘정신적 장애‘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두 문화 사이에서 표류하며 떠돌았다.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인디언 문화에 민속학자로서 스며들어 가 있는 한, 자신의 문화는 물론 자신을 그런 과업으로 이끌었던 고된 과학적 훈련을 잊게 되었다. 반면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문화로부터 초연성을 유지하고 있는 한, 그는 완전한 이해를 허용하는 기본적인 연결고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책 제목의 ’열대‘라는 말은 레비스트로스에게 이런 개인적.직업적 이율배반을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특히 ’슬픈‘ 것이었다. 그는 그런 이율배반이 세계와 그 속의 사람들의 본성에 대한 정신적 연구에 잠복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가장 과감한 탐험가들과 섬세한 연구자들에게 알려진 이런 형태의 금지된 지식은 인간 정신과 그 주위 세계 사이의 양립 불가능성이 깊이 파여 있음을 의미한다. - 로저 샤툭.『금지된 지식』. 부록 1 금지된 지식의 여섯 범주

인용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미국의 문화비평가 로저 샤툭(1923-2005)이 분류한 여섯 개의 범주를 소개한다. <1. 접근과 획득이 불가능한 지식 2. 신적, 종교적, 도적적, 세속적 권위에 의해 금지된 지식 3. 위험하고 파괴적이고 환영 받지 못하는 지식 4. 나약하고 섬세한 지식 5. 이율배반적 지식 6. 모호한 지식> 묶어보면 저 그리스신화 속 괴물 스핑크스의 질문에 오이디푸스처럼 ’인간‘이라고 명쾌하게 정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인간적, 너무나 인간적인 지식의 영역들이다.

이런 면에서 오스트리아 출생의 영국 철학자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정언은 지극히 온당하다. “철학적 문제는 해결이 아니라 해소하는 것이다!” 비단 철학적 명제뿐만이 아니다. 인간들이 모여 사는 한 국가는 정치와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야기되는 갈등을 속속들이 죄다 해결할 수는 없다. 세대와 계층, 지역의 구성원들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얼마간 해소가 되었다 여길 뿐이다. 일찍이 이런 ’인식적 결함‘을 경험하고 책으로 전한, 레비스트로스의『슬픈 열대』마지막 문단을 되새겨 보아야만 한다.

개인이 집단 속에서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또 각 사회가 여러 사회들 가운데서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도 우주 속에서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문화의 무지개가 우리의 열광으로 패인 허공 속으로 빠져들기를 멈추었을 때, 즉 우리가 여기 있고, 또 세계가 존재하는 한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연결시켜 주는, 그 가느다란 아아치는 우리 앞에 그대로 머물 것이다. 그 아아치는 우리의 노예상태의 길과는 반대되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을 것이며, 우리가 그 길을 따라갈 수 없을지라도 단지 그 길을 숙고하는 것만으로써도 우리는 우리가 부여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은총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 레비스트로스.『슬픈 열대』제9부 귀로歸路

베트남보다 먼 ’미얀마‘라는 나라의 한 여성이 절명했다. 치알 신이라는 19살의 그녀는 지난 3일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항의 시위 중 머리에 총탄을 맞고 숨졌다. 한국의 태권도와 춤을 좋아했던 치알 신은 '모두 잘 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라고 쓴 티셔츠를 입고 집회에 합류했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그 문구는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그녀는 민주화의 영웅이 되었는데 장례식에 수많은 국민들이 몰려들었다. 이어지는 집회에서 하루에 많게는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외신 보도에 이어, 끔찍한 ’도굴‘ 뉴스가 전해진다. 군부는 시위군중 최초의 희생자인 그녀의 머리에서 찾아낸 ’총알‘이 군대나 경찰의 것이 아님을 발표한다.

지구촌의 나라를 좀 더 이해하는 손길이 그렇듯 세계지도를 펴면 미얀마는 인도와 인도양, 중국, 태국과 라오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1885년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했다가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해 국호를 버마연방으로 정했으며, 2010년 11월 미얀마연방공화국으로 개칭했다. 1962년 쿠데타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군사정권이 들어섰고, 1988년 민주화 요구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신군부가 권력을 잡았다. 1990년 총선에서 아웅산수치의 국민민주연합가 압승했는데 잦은 군부의 반발로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역사는 제3세계 후진국이 밟는 정치발전의 판박이고, 우리나라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살려주세요#”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 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도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한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 한강. 장편소설『소년이 온다』. 에필로그「눈 덮힌 램프」

1979년의 10.26과 12.12, 1980년의 ’서울의 봄‘과 5.17 비상계엄, 5.18 민주화운동, 그리고 1981년 3월 3일 출범한 전두환의 제5공화국... 혼돈 자체였던 그 현대사의 한복판에 있었다, 나는. 면面의 우체국장이신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인이신 어머니 사이의 외아들로 1959년 태어났고, 10.26 당시 지방의 국립대 국어국문학과 2학년 문학청년이었다. 그러니까 21살이었는데 박정희대통령이 시해되면서 내려진 휴교령이 겨울방학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해 봄부터 막심 고리끼(1868-1936)의 장편소설『어머니』를 기반으로 동아일보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응모할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1950년 한국전쟁을 둘러싼 두 아들 형제의 이데올로기와 직면한 어머니... 그러나 자료조사는 물론 필력이 미치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보다 변명이지만 아나키스트- 그 자유로운 집안의 분위기에서 성장한 탓에 좌와 우, 우와 좌 그 어느 편의 이론적 무장으로 ’엄마‘를 설득할 수 없었다. 아무튼 10.26을 전하는 호외를 접하자마자 200자 원고지 뭉치가 든 등산 배낭을 매고 마곡사로 향했었다. 친부께서 우체국장으로 근무하셨던 지금의 공주시 사곡면 소재로 초등생 시절 이태 동안 봄과 가을 소풍을 다녔던 절집이다.

뭣 때문에 내 아들과 그의 동지들이 재판을 받았는지,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제가 모든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에미의 진심을 믿어 주십시오. 이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믿어 주시오. 어제 그들은 여러분 모두에게 진리를 가져다 주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재판을 받았습니다. 어제 나는 진리가 과연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진리와는 어느 누구도 논쟁을 벌일 수가 없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우리는 사실 아는 것도 하나 없고, 언제나 벌벌 떨며 살아와 모든 걸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밤이 바로 우리의 삶이었습니다. 칠흑 같은 밤 말입니다! - 막심 고리끼(1907).『어머니』29

1979년 12월 10일- 어머니의 ’진리‘ 그 이미지를 그린 200자 원고지 27매의 동화 한 편을 건진 채 공주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눈발이 흩어지는 흐린 하늘을 쳐다보다 발길을 옮기는데 신문가판대가 눈에 들어왔다. 운명인지도 모르는, 훗날 보면 그렇게 예정된 신춘문예 공고- 그해 공모 기간 중 동아일보가 가장 늦었고, 그날 우체국 소인이 유효했던 것. 하늘땅땅 만큼 좋아해요- 동화부문 입선으로 자고 일어나나 학내외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로부터 유신체제의 학도호국단을 폐지하고 학생회를 부활시키려는 운동권의 ’표적‘이 되었고, 총학생회 선거를 거쳐, 문예부장으로 1980년 3월의 대학 3학년을 시작했다.

1980년 4월 30일 수요일 오후 2시 대전역 광장- “전두환은 물러가라! 훌라- 훌라-” 충남대와 목원대, 한남대 등 종합대학은 물론 전문대생까지 1만여 명이 운집한 그곳. 전국에서 최초로 시가지 집회가 열린 그 날 3장의 대자보를 낭독했다. 서울에서 수시로 열린 전국대학총학생회장 회의 결과가 적힌 대자보를 접어 가슴에 품고, 구호를 외치고, 눈을 들자 소리 없는 ’눈총‘이 집중포화로 쏟아졌다, 광장 맞은편 대로변의 대전일보를 비롯한 빌딩의 옥상에서 발사된. 만약에, 혹여 상공을 선회하던 경찰 헬기에서 정조준해서 쏘았다면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갔을 것이다. 시위대와 떨어져 홀로 대자보를 낭독하고 있었기에... 서울의 봄- 5월 15일 서울역의 ’위화도 회군‘이 벌어졌고, 5,17과 5,18이 이어졌었다.

총신의 서늘한 그림자를 본 사람 만이 안다. 그 총구가 어디에, 누구와 있는지... 41년이 흐르고 다시 새봄에 접한 이국의 한 여성의 죽음- 만약 총알을 맞지 않았다면 그녀는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자식들의 어머니가 되었을 터. 그 ’은총의 무지개‘를 보며 살아갈 한평생의 평화가 깨지고 말았다. 지상을 떠난 그 여인은 한 마리 새가 되어 울어대리라. 저 카잘스의 첼로 선율처럼 영원히, 우리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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