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국가의 책무
진정한 국가의 책무
  • The Assembly
  • 승인 2020.07.2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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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사무총장
이재훈 사무총장

#1. 19537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북한군의 침략으로 3년이 넘도록 울리던 포성이 멈췄다. 휴전회담이 시작한 지 600일 만에 이뤄진 성과였다. 전쟁은 국토를 잿더미로 만들었고 희생자는 300만 명이 넘었다. 이산가족은 1000만 명이 넘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31개월 2일 만에 멈춘 것이다. 휴전 협정은 양측 모두에게 불만족스러웠다. 불안정한 남북 대치상태의 시작을 알리는 협정이기도 했다. 70년이 넘도록 군사적 긴장은 이어지고 있다.

협정 당시 쌍방은 전쟁포로송환에 합의했다. 19538월부터 9월까지 유엔군사령부는 83258(인민군 76,119, 중공군 7,139)의 공산군 포로를, 공산측은 13,469(한국군 8,343, 유엔군 5,126)의 연합군 포로를 상호 송환하였다. 하지만 김일성은 6만 명 이상의 국군포로를 송환하지 않았고, 이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2. 미국은 건국 이래 변하지 않는 원칙이 하나 있다. 전장(戰場)에서 사망한 군인들의 유해는 반드시 찾아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것이다. 유해가 돼서라도 그들이 집으로 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 찾겠다는 것은 국가의 약속이다. 미 국방부 산하 전쟁 포로 및 실종자 담당부서인 미군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 사령부JPAC(Joint POW/MIA Accounting Command)가 그 임무를 담당한다. JPAC의 목표는 누구도 뒤에 남겨놓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비용과 시간을 따지지 않는다. 세계 어느 곳에 가서라도 자국 전사자 발굴과 유해 송환을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 자국 군인을 대우하고 보호하는 정책은 본받을 만하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명예로운 군대를 보유하게 된 비결이다.

6·25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70여 년이 흘렀다. 휴전협정 체결 시 유엔군사령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쟁 중 포로로 잡히거나 실종된 한국군을 82000천 명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북한은 8300명의 국군포로만 송환했다. 그동안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온 국민이 피땀 흘리며 전쟁 상흔을 복구하는 데 집중했다. 결과는 한강의 기적이었다. 세계가 놀랄 만한 일이었다. 잿더미에서 우뚝 일어선 대한민국은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국토재건과 경제발전이라는 과제 속에서 북에 억류된 국군포로에 대해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국가도 국민도 미처 그들을 생각하지 못했고 챙길만한 여력도 없었다. 돌이켜 볼수록 민망할 뿐이다. 우리 모두가 국군포로라는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러던 19946·25 당시 전사자로 처리됐던 조창호 소위가 북으로부터 귀환했다. 포병장교로 참전했던 조 소위는 강원도 인제에서 중공군에 포로가 됐다고 했다. 포로로 잡힌 뒤엔 북한의 탄광으로 끌려가 43년간 모진 고생을 했다. 그는 자력으로 탈출해 귀환했다. 전 국민은 감동했고 환호했다. 조 소위는 진정한 군인 정신의 귀감이라 불렸다. 443개월이라는 최장기록의 군 생활을 마감했다. 조 소위는 200676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조창호 소위 귀환을 시작으로 6.25전쟁 당시 공산군과 싸우다가 포로가 된 장병들의 귀환이 이어졌다. 2010년까지 80명의 국군포로가 귀환했다. 하지만 2011년 이후부터는 전무 하다. 이와 같은 귀환 부재는 국군포로의 고령화가 주된 원인으로 분석되지만, 우리 당국의 미흡한 조치가 이런 사태를 야기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귀환 포로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 규모를 500여 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이 땅에 자유의 초석을 다졌던 이들은 지금도 북한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 그 가족들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군포로와 유해 송환 문제가 이슈화될 때마다 미국이 떠오른다. 미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군 유해를 찾으려고 세계 어디든 찾아간다. 하와이에 있는 미군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 사령부(JPAC)’가 그 일을 한다. 그들이 발굴 작업을 시작할 때 중요한 부분은 유해를 찾을 확률 같은 것이 아니다. ‘언젠가 조국이 나를 찾으러 올 것이라고 믿었을 자국민의 간절한 기다림이 먼저다. 2009년 화천에선 신고 주민 진술만으로 JPAC 요원들이 태평양을 건너왔다. 진술 하나에 발굴 작업을 시작하는 그들의 모습은 적잖은 감동을 선사했다.

JPAC는 소장급을 사령관으로 하고 박사급 전문 인력 30명을 포함해 18개의 발굴팀과 6개 조사팀 등 440여 명으로 구성된다. 엄청난 규모다. 이들이 사용하는 예산은 연간 600억 원 규모다. 대령급이 담당하는 우리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과의 괴리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미국 국립묘지, 참전기념관, 공공기관엔 성조기와 함께 검정색 깃발이 게양돼 있다. ‘전쟁포로 실종자 깃발이다. 그 깃발엔 당신은 잊혀지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조국을 위해 희생된 군인들의 생사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유해라도 찾아 송환한다는 것이 미국 정부와 군 당국의 의지이자 철칙이다.

200910월 미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새벽 3시쯤이었다. 수송기 한 대가 도착했다. 수송기엔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미군 18명의 시신이 실려 있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전투복 차림 군인들과 나란히 도열했다. 그는 시신들이 모두 운구차로 옮겨질 때까지 거수경례를 했다. 의장대도 음악도 조명도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군 전사자 시신 송환을 직접 맞이했다. 미국이 세계를 제패하는 가장 큰 힘은 지도층의 의무와 책임 정신에서 나온다.

20202월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병해 코로나19’로 명명된 우한폐렴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우리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각 나라에 전세기를 투입해 교민을 철수시켰다. 일본 요코하마에 정박 중인 공포의 크루즈선에 탑승해 있던 우리 국민은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3호기를 투입해 수송했다. 신속한 교민 수송에 대해 국민은 환호했다. 정부는 재외국민 보호차원으로 신속하게 대처함으로써 국가의 책무를 실행했다.

지도자의 책임과 의무정신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다. 정부의 발 빠른 해외국민 수송 대책에 대한 찬사를 보며 필자는 잊혀진 영웅국군포로를 떠올렸다. 국군포로는 역대 어느 정부도 공식적으로 송환 받지 못했다. 그들은 지금도 적지에서 노예와 같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끊임없이 북한을 향해 화해와 평화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참에 국군포로 귀환과 유해 송환을 위해 마지막 힘을 쏟아주기를 희망한다.

억류된 국군포로와 유해의 송환을 외면한다면 누가 조국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인가. 국군 포로와 전사자 유해는 어떤 노력과 비용을 들여서라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낸다는 각오를 가져야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잊혀진 영웅미귀환 국군포로. 죽어서 혼백이라도 휴전선을 넘겠다며 절규하고 있는 이들의 귀환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 시간이 없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늦지는 않았다. 국민의 명령이다. 정부는 국군포로를 송환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귀환하신 분들에겐 최고의 예우를, 송환된 유해는 마지막 안식처인 현충원에 정중히 모셔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국가의 책무다.

*이재훈(국민생활안보협회 사무총장, 해병대전략연구소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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