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단상들: 반복되는 무질서는 질서가 된다, 질서
‘코로나19’ 단상들: 반복되는 무질서는 질서가 된다, 질서
  • The Assembly
  • 승인 2020.04.1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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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산마루는 작아지고 벽은 무너지고 있다. 시간과 장소는 늙어 버린 지각의 떨림으로 흩어져 버린 앙금처럼, 서로 부딪치다가 나란히 놓이기도 하다가 또는 서로 뒤바뀌기도 한다. 맨 밑바닥에 있던 오래된 작은 일이, 뾰족한 산봉우리처럼 솟아오르는 일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내 과거에 누적된 모든 것이 자취도 남기지 않고 가라앉아 버리는 일도 있다. 잡다한 시대와 지역에서 온 것이며, 겉보기에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서로 스쳐 지나가다가, 나의 이야기를 따를 게 아니라, 어느 현명한 건축가의 설계에 따라 지어진 듯한, 작은 성의 모습으로 갑자기 굳어버리기도 한다. -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제1부 선행지先行地 제4장 힘의 탐구

먼저 ‘잡다한 시대와 지역’이라는 측면에서 시대를 가르며 시작하자. 한국의 베이비부머(1955-1963 출생)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기 시작한 해가 바로 2019년이다. 물론 직업군에 따라 정년이 다르지만 대체로 환갑을 기준으로 잡으면 그렇다. 1959년 기해년 출생의 나 같은 방송사 PD들 역시 58세에서 연장을 했다손 치더라도 퇴임할 시기다. 여하튼 2020년 벽두의 ‘COVID –19’ 팬데믹에 어떻게 잘들 지내시는지 안부를 여쭙고 싶다. 어느 재기발랄한 후배에 전언에 따르면 직장에서 ‘사회’로 나오면 해외의 대학을 더 다닌다고 한다.

하버드, 산둥대, 동경대, 하와이대, 방콕대... 은퇴 후 서너 달까지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하루 내내 바쁘게 집을 드나든다. 여기저기에 재취업 서류를 제출하느라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친 다음에는 죽어라 산으로 등산을 다니고, 동네 경로당을 기웃거리게 되고, 1년여 지나면 하루 종일 와이프만 들볶고, 종당에는 방에 콕 처박혀 지낸다는 웃픈: 웃기지만 슬픈 이야기이다. 묶어보면 신중년 일자리 창출이니, 경력 단절자 창업 지원 등 정부 차원의 대책을 기웃거려 보지만 그도 마뜩잖다.

레비스트로스의 표현대로 ‘현명한 건축가’의 주된 재료인 세월이 산마루 그 위상을 깎아내리고, 공고한 위신의 벽채를 허물어 ‘투명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작은 성의 투명한 성주- 그렇다. 있어도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처치 곤란한 ‘사람’이 된 세대. 유신, 88 서울올림픽,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삼풍백화점 붕괴, IMF 사태, 2002 사스, 2008 금융위기, 2015 메르스... 숱한 고비를 잘도 버텨온 사람들.

레비스트로스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군 통역장교로 근무하다 1941년 마르세이유에서 밀선으로 프랑스를 탈출한다. 그는 미국 인류학자의 알선으로 뉴욕의 신사회조사연구원으로 재직하며 러시아에서 망명한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을 만나고 구조언어학을 접한다. 그로부터 12년 뒤 47세 되던 해인 1955년 『슬픈 열대』를 출판해 문화인류학계의 총아로 떠오른다. 루소(1712-1778) 이후 가장 프랑스적인 지성인이라는 레비스트로스는 꼭 1세기에 1년을 더한 101세(1908-2009)를 일기로 영면했다.

굴원의 『어부사』는 양쯔강 이남으로 추방되어 탄생했고, 치욕스런 궁형의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했고, 시베리아로 유배당하지 않았다면 도스토에프스키의 명작들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1849년 12월 러시아 세묘뇨프 광장의 사형대에 선 반체제 혐의의 28세 청년-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그날 밤 도스토예프스키는 동생에게 편지를 썼다. “지난날들을 돌이켜보고 실수와 게으름으로 허송세월했던 날들을 생각하니 심장이 피를 흘리는 듯하다. 인생은 신의 선물- 모든 순간은 영원의 행복일 수 있었던 것을 조금 더 젊었을 때 알았더라면... 이제 내 인생은 바뀔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산부인과에서 태어나고 종합병원에서 죽는 세상, 호화롭거나 비인간적인 양태를 띤 일시적인 점유와 통과 지점들(호텔 체인, 무단 점거, 바캉스 클럽, 망명자 캠프, 철거되거나 영영 썩어들어갈 판자촌)이 증식하는 세상, 거주 공간이 되기도 하는 교통수단들의 조밀한 네트워크가 발전하는 세상, 대형 매장, 자동판매기, 신용카드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소리 없는’ 상거래의 몸짓과 다시 관계 맺는 세상, 그리하여 개인성, 일시성, 찰나성이 약속된 이 세상은 인류학자나 다른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대상을 제시한다. 그 대상이 어떤 시선(학문)의 소관인지 자문하기에 앞서 그 참신한 차원을 헤아려보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 - 마르크 오제(1992) 『비장소: 초근대성의 인류학 입문』 장소에서 비장소로

1935년생인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인 마르크 오제는 1965년부터 1985년까지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와 토고에서 진행한 현지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알라디안 연안』,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이론』, 『삶의 권력, 죽음의 권력』 같은 연구서를 발간해 세계적인 인류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용어대로 정체성과 관계적이고 역사적인 것인 ‘장소’의 연구 이후에는 초근대성의 상징인 익명성의 공간인 ‘비장소’를 일상의 인류학 주제로 에세를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이는 곧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인간문화의 무지개’인 셈인데 비장소는 거주지나 일반적인 의미의 장소와 정반대의 공간이다.

코로나 19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두 달째 이어지며 피로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제 ‘슬기로운 사회생활’을 위한 법에 준하는 준칙이 세워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각급 학교의 개학이 연기를 거듭하고, 등교는 여전히 금한 채 온라인 ‘학교’가 준비되는 형국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증유의 팬데믹에 4.15 제21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물론 사회와 경제, 문화계 할 것 없이 가히 카오스적인 공황상태에 빠졌다. 마르크 오제 식으로 ‘유래 없는 확장의 비장소’에 대한 인류사적 대책과 사유가 새삼 논의될 시점이다.

남해의 임금을 숙儵이라 하고, 북해의 임금을 홀忽이라 하며, 중앙의 임금을 혼돈渾沌이라고 한다. 숙과 홀이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이 매우 융숭하게 그들을 대접했으므로, 숙과 홀은 그 은혜에 보답할 의논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눈, 귀, 코, 입의 일곱 구멍이 있어서 그것을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이 혼돈에만 없다. 어디 시험삼아 구멍을 뚫어 주자! 그래서 날마다 한 구멍씩 뚫었는데 7일이 지나자 혼돈이 그만 죽고 말았다. - 『장자』 제7편 응제왕 12

나는 이 ‘혼돈이 칠규七竅: 일곱 개 구멍으로 죽었다’는 이 일화가 『장자』의 백미라고 여겨왔다. 혼돈이라는 한자가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지 않은 상태’와 ‘사물의 구별이 불분명한 상태’라는 중의성을 뜻하는 것도 의미심장하고, 『성경』의 천지창조 7일과 견주어 보면 더욱 그렇다. 어떻든 인위적인 힘이 자연의 순박성을 파괴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전에는 혼돈처럼 그지없이 평온했다 어느 편으로 해석하든 장자 전반에 걸쳐서 가장 빼어난 우화임이 분명한 것이다.

좌우지간 모쪼록 어쨌든 신중년들이여. 본인은 물론 가족들 건강 잘 챙기셔서, 기약 없는 날이지만 훗날 어느 술청에서 회동해 정담 나누길 비손합니다. 희망이 없는 것은 상처가 없는 것- 희망이 있는 것은 바로 상처가 있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 김래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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