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가 마산 부마항쟁을 농단해온 부마항쟁기념사업회에 편승하는 까닭은?
창원시가 마산 부마항쟁을 농단해온 부마항쟁기념사업회에 편승하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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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0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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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신 박사
정주신 박사

경남 창원시는 올해 부마민주항쟁 40돌을 기념해 NC 다이노스 창원 홈경기 전 당시 항쟁 참여자인 최oo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이 마운드에 올라 기념 시구를 했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최 회장은 19791016일 박정희 독재정권에 저항해 부산시민들이 일으킨 항쟁이 1018일 마산에 번질 때 6~7명 속에 있다가 무학초교 주택가에서 그 친구인 옥oo와 함께 경찰21조에게 평범하게 잡힌 채 시위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마산경찰서 유치장에 맨 먼저 갔을 뿐이다. 오히려 항쟁 농단세력을 거창하게 주모자?로 운운하며 기념 시구를 강행한 것은 3·15정신, 10·18정신을 부정해 사리사욕을 채우고자한 농단세력에 백기를 든 것처럼 창원시가 사리분별과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시위라곤 해보지도 못하고 어떨 결에 경찰의 손에 이끌려갔을 뿐인데, 창원시는 목격자가 나타났으니 현장조사나 대질심문을 통해 진상규명에 박차를 가하지 못하고 그들에 편승한 셈이 되었다.

창원 홈경기 때 누가 많은 관중 앞에 시구하는 게 중요하지는 않다. 그 시구는 누구나 할 수도 있고, 지역의 유지나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이벤트성에 불과하다. 문제는 최 회장이 시구를 하고 부마항쟁 때 시위를 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른 오류라는 것이다. 창원시가 부마항쟁 진상규명에 어떠한 역할을 했으며 기념사업회를 얼마나 안다고 기념사업회를 내세워 항쟁 40주년 운운하며 시구를 시켰다는데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그동안 창원시는 객관적으로 마산 부마항쟁을 검증하였는가. 아니면 진상규명위원회에 창원시장이 당연직 위원으로서 몇 번이나 참석하였는가. 부마항쟁의 인과관계도 모르면서 단지 그들이 독차지하며 사유화해서 항쟁농단의 거점지였던 기념사업회가 회장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시구를 맡겼다는 것은 창원시가 진실규명 없이 마산 부마항쟁을 농단해온 마산 기념사업회에 매년 수천만 원씩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관계성으로 볼 때 오히려 편승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게다가 시민들의 혈세를 매년 수천만 원씩 보조금을 대주면서 음악회와 영화제나 마라톤 등 각종 행사와 기록물인 자료집이나 증언집을 양산해 내는 것도 항쟁농단과 그 공고화가 되고 있다는 점을 창원시가 각성해야할 것이다.

첫째, 창원시는 산업지로서 입지를 다지면서 본래 창원군이 산업신도시로 변모되면서 그간 중심지 역할을 해온 마산시와 진해시로부터 인구가 유입되면서 인구가 역전돼 창원시가 마산시와 진해시를 흡수통합하면서 도청소재지로서 면모를 보였다. 그러니까 창원시는 창원군 위치에서 산업입지와 신도시로 변모되면서 마산시와 진해시를 통합해 인구 백만 명을 상회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시체 말로 창원의 역사는 일천하며 더욱이 3·15의거나 10·18부마항쟁이라는 민주화의 성지인 마산을 창원시로 하여금 민주화의 정당성을 내세우게 된 요체가 되었다. 그러므로 창원시로서는 마산의 민주화 성지를 송두리째 넘겨받았으니 항쟁 40주년을 국가기념일로 치루고 창원을 민주화 성지의 메카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 같다. 그러나 민주화의 성지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적 진실규명 없이 맹목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닌 바, 이제서라도 목격자가 나타났으니 마산 부마항쟁의 진실규명을 제대로 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둘째, 부마민주항쟁 10주년 기념 자료집은 부산의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자료편찬위원회'와 마산의 '부마민주항쟁 10주년 기념사업회 학술분과'가 공동으로 편찬하였다. '부마민주항쟁 10주년 기념사업회'(후일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로 발족)를 조직·장악하고 사유화한 5인방?(o1, oo, oo, o2, o1)은 시위조차 못했음에도 그들만의 검경 공소장을 자료집에 게재해 항쟁과정을 자신들의 전리품인 양 그릇된 행태로 자료집을 왜곡 편집하였다. 즉 편집 분과장을 정o2가 하고 실무자로 정o2 제자(o2)가 맡는 등 중차대한 기록물과 자료집의 편집 및 발간을 5?만의 입맛에 맞게 독선적으로 펴낸 것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2011부마민주항쟁 증언집: 마산편발간은 마산 민중들의 자발적인 시위와 항쟁의 의의를 희석시키고 그들의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자료 편집 및 구성을 하면서 마산 부마항쟁을 5인방?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더욱 공고화시켰다.

셋째, 앞서 야구장에서 시구를 한 oo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은 옥oo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위원과 함께 학교로부터 동행한 6~7명 중 2명만이 무학초교 인근에서 경찰 3m 앞에 평범하게 잡혔을 뿐인데, 자료집 증언 내용을 보면 경찰 2명이 '긴 머리카락을 한손에 움켜쥐었다'거나, oo의 경우 '옷부터 찢어 내렸다'는 증언은 목격자가 증언하듯이 평범하게 잡힌 사실을 팩트와 전혀 다르게 항쟁을 오류투성이로 만들어낸 장본인들이다. oo는 또 시멘트 바닥 경사진 길에서 드러누워 소리를 막지르고 한 5m 되는 요철 있는 도로에 질질 끌려가서 백차에 실렸다 했고 원피스를 입었기 때문에 팬티 속옷이 드러나고 피가 철철 흘렀다는 등 거짓으로 일관하며 항쟁 농단을 일삼았다. 그런데 이들이 없었던 사실을 조작해내 국가배상금을 타내는 수법이 항쟁관련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이 일자 최근 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 작성에서 그들의 한통속인 정o2 제자인 박o2에 의해 이러한 최oo, oo경찰에게 500m50m를 질질 끌려다니고 피투성이가 됐다는 파렴치한 거짓을 쏙 감추고 이제는 3·15탑에서 200명과 함께 시위하고 구호를 외쳤다고 또 다른 조작을 일삼고 있다.

넷째, 이러한 왜곡된 증언은 최oo, oo, o2 3인의 부마항쟁 피해자(자칭 주모자? 포함) 7)201010월께 국가를 상대로 2천만~3천만 원씩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국가(법원)을 상대로 낸 것이, 피고인 국가(법원)가 이들의 증거를 알 수 없다보니 원고 7명 전원에게 1천만~3천만 원씩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로 결과 졌다. 그리고 항소심을 제기한 원고 3명 중 최oo·oo 씨에게 2천만 원을 배상하도록 한 원심을 깨고 3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oo·oo·o2 3명은 배상요구액을 5천만~1억 원으로 늘려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2심을 유지하면서 이를 기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최oo·oo과 학교에서 3·15탑 근처 무학초교까지 동행했던 목격자가 있으니 국가(법원)은 국가의 근간을 훼손시킨 이들을 중대한 범법행위의 사기죄로 다스려야 마땅할 것이다.

결국 올해 부마항쟁 40주년과 국가기념일 지정 맞아 진상규명 부재 속에 기념사업회가 거짓 증언으로 뻔뻔하게 국가배상금 편취하고 범법적 행동 일삼고 국가의 근간을 허물었음에도 창원시나 국가는 목격자가 나타났으니 현장조사나 대질심문을 통해 진상규명을 밝혀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농단을 일삼은 세력에 편승해서 3·15정신, 10·18정신 운운하는 것을 보면 진실보다는 거짓과 농단 세력을 비호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더욱이 농단세력은 국가가 설립하고 주관하는 부마항쟁진상규명위원회나 부마항쟁기념재단마저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국민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아직도 5인방? 중 일부는 진실을 속이며 거짓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음은 3·15정신 훼손과 부마항쟁 정신 도둑질이야 말로 국가나 국민을 우롱하는 짓이고 국민과 창원시민들에 대한 두려움과 죄값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짓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던 그 손으로 아무런 반성과 속죄없이 야구장 마운드에서 시구한들 그 야구공은 창원시민들에게는 항쟁농단의 무기요, 국민들에게는 항쟁조롱의 혈세 편취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필자: 정주신 박사/한국정치사회연구소장/한국국회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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