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출신 정주신 씨, 마산 부마항쟁 첫 도심시위 주도
대전 출신 정주신 씨, 마산 부마항쟁 첫 도심시위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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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2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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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부마항쟁 발발 40주년, 국가기념일 지정 앞두고 그 의미 재부각
정주신 씨
정주신 씨

[대전투데이 대전=송병배기자]대전 출신 정주신(사진)씨가 마산 부마항쟁의 도심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밝혀져 정가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올해는 부마항쟁 발발 40주년이자 국가기념일 지정을 앞둔 시점이어서 그 의미는 남다르다. 이러한 증언은 마산 부마항쟁 진실규명에 획기적인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 증언에 따르면 정주신 씨를 포함한 4~5명은 지난 1979년 10월18일 오후 당시 경찰의 교문 철통방어로 막혀 실패위기에 처하자 더 이상 교내시위의 불가피함을 역설하고 학생들을 도심에 집결하기로 결정했다.

정 씨는 이날 오후 5시 20분경 조흥은행 네거리에서 “이제 힘차게 나가자!!”라고 소리를 지르며 차도의 주변 상가나 골목에서 4~5명과 합류해 시위의 불을 지폈다. 이 적은 숫자에 의한 시위발발이 이른바 마산 부마항쟁의 첫 도심시위였다는 전언이다.

10.18 마산 부마항쟁 교내시위 현장
10.18 마산 부마항쟁 교내시위 현장(경찰의 저지선에 도심진출이 봉쇄되자 교내 게시판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방향모색하고 있는 군중사진 장면, 이 희귀한 자료는 경찰에 의해서 찍힌 것으로 추정됨. 정주신은 이들 군중 가운데서 4~5명이 토의하는 학생 중 바지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사람임)

이후 시위대는 20명 안팎으로 늘어나 '애국가' '우리의 소원은 자유'의 노래를 부르거나 '유신철폐' '정권타도' 등을 선창하며 항쟁 초기 시위대로서의 선도적인 역할을 다하며 진군과 회군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그결과 도심항쟁의 큰 획을 긋게 됐다는 평가이다.

20명 안팎의 선도시위대의 작은 물줄기가 2천여 명의 군중이 집결된 큰 강물을 이뤄내듯이 합세해 더 큰 파도의 민중항쟁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 마산 부마항쟁은 7일 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장기집권을 해온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는 직접적인 도화선으로 한국 민주화운동의 큰 획을 긋는 질적 규정의 민중항쟁이었다.

정주신씨는 정치학박사로 정부로부터 부마항쟁 민주화운동자로 인정받았으며, 당시 군사재판에 회부됐다가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풀려났다. 그동안 학자로서‘10월 부마항쟁사: 유신체제의 붕괴’, ‘10월 부마민주항쟁’, ‘6월항쟁’, ‘5·18 민주화운동’ 등 민주화운동관련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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