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손, 발길 모은 꿈의 여행
눈과 손, 발길 모은 꿈의 여행
  • The Assembly
  • 승인 2019.07.0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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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전통사회에서는 세상의 의미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실재였고, 그 세상 밖에는 위협적인 혼돈이 존재했다. 그것들이 위협적인 이유는 비실재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재의 중심에 집을 갖지 못하면, 거주처가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무존재의 비실재적 속에서 스스로가 상실되었다. 집이 없으면 모든 것은 파편일 뿐이었다.

- 존 버거 산문집《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24절기의 소서와 대서, 초복과 중복의 7월- 보름마다의 절후와 열흘씩 세 번 드는 복伏은 말만 들어도 숨이 막힌다. 그런 철이면 휴가를 떠난다,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부리며 살아낸 한 해의 중반에서 얼마간 쉬는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면 후반기에 다시 도전하자. 한 고지를 점령했다면 다른 산을 찾아보자. 어느 편이든 실재의 ‘집’에서 비실재적인 ‘내일’을 찾는 것이 휴가의 본질이다.

휴가의 두 번째 본령은 ‘떠남’이다. 물론 일손을 놓고 그냥저냥 집안에서 육체와 영혼을 방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주거지를 벗어나는 여행이 휴가라는 단어에 은밀히 내포되어 있다. 목적지를 정하면서 차편을 알아보고, 무엇을 먹으며 재미나게 놀 것인가! 이런 여정과 여로, 여행은 일상의 페르소나persona임이 분명하다. 의식을 떠나 무의식을 좇는 행위가 곧 휴가다.

이레네는 전등불이 켜지는 시간에 고원의 가장자리 밖으로 몸을 내밀면 보이는 도시로, 공기가 맑을 때는 저 멀리 아래쪽으로 분홍빛 촌락이 선명하게 눈에 띕니다. 창문이 다른 곳보다 더 많이 모여 있는 곳, 어슴푸레한 가로등이 한적한 골목들을 비추는 곳, 탑들이 봉화를 올리는 곳 말입니다. 안개가 낀 저녁이라면 흐릿한 빛이 개울 바닥의 우윳빛 해면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제8부 도시와 이름 5

우리 사는 육지의 땅끝마을이나 제주도, 아니면 서해의 어느 섬마을 풍경이 이러할까? 이탈리아 제노바만의 산레모- 어느 호텔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그러할까? 코트다쥐르. 아쿠아마린 빛 지중해의 망퉁이나 니스, 칸느도 그럴 것이다. 북유럽의 노르웨이나 대서양 캐나다의 해안도 다르지 않을 터. 하지만 그런 ‘이레네’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1964년에 발표된 쿠바 출신의 이탈리아 작가 칼비노(1923-1985)의 장편소설은 현대판 중국의 고대 기서《산해경》이다.

제9부까지 총 55개의 도시가 등장하는《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마르코 폴로가 방문한 도시를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보고하는 형식이다. 실제로 베네치아의 상인 폴로는《세계 경이의 서》저자로 몽골족의 원元(1271-1368)에서 17년 동안 관리를 지내기도 했다. 그런 만큼 실재성이 높지만 모두 가상의 도시를 그리고 있다. 심리와 감각 그리고 물질 등 숱한 군상들의 총화인 도시 이야기. 마침내 칸은 공물의 채스판과 말들이 나무가 변한 무無- 곧 제국의 허무임을 깨친다.

제요아에서는 난새가 절로 노래하고 봉새가 절로 춤을 추며 백성들은 봉황의 알을 먹고 감로를 마시고 모든 하고 싶은 일들은 절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온갖 짐승들이 서로 떼지어 살고 있다. 그곳은 네 마리의 뱀이 있는 궁산의 북쪽에 있다. 그곳의 사람이 양손에 알을 쥐고 그것을 먹는데 두 마리 새가 앞에서 그를 인도하고 있다. -《산해경山海經》7 해외서경海外西經 18

고대 신화.지리서인《산해경》은 저자는 물론 편찬 시기도 불분명하다. 전인미답. 그러나 상상할 수 있는 산과 바다 건너 숱한 나라의 식물과 동물, 사람들- 현존하는 18권 30,825자는 인간의 꿈과 무의식 그 비실재적 여행지의 집적이다. 곽박(276-324)은《주산해경서》에서 ”세상의 이상함은 결국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사물에 있지 않다!“ 라며 저본의 기이성을 한껏 옹호했다. 칼비노의《보이지 않는 도시들》역시 《산해경》의 주석서이다.

인도의 세계적인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의 묘비명은 이렇다.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다. 단지 1931년부터 1990년 사이에 이 행성 지구를 다녀갔을 뿐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인간은 무한한 우주를 여행하는 순례자이다. 그렇다. 자고이래로 사람은 여기, 지금을 떠나고자 애쓰는 생득적 기질을 발휘해 왔다. 그런 결과 뉴아틀란티스, 오세아나, 타모에, 뉴래너크 같은 이상적 도시들도 생겨났고, 에녹과 소돔, 바빌로니아, 부투아 같은 멸망의 도시도 건설했던 것이다.

마르코 폴로가 돌 하나하나를 설명하며 다리를 묘사한다. “그런데 다리를 지탱해 주는 돌은 어떤 것인가?” 쿠빌라이 칸이 묻는다. “다리는 어떤 한 개의 돌이 아니라 그 돌들이 만들어 내는 아치의 선에 의해 지탱됩니다.” 마르코가 대답한다. 쿠빌라이는 말없이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이렇게 묻는다. “왜 내게 돌에 대해 말하는 건가? 내게 중요한 건 아치뿐이지 않는가?” 폴로가 대답한다. “돌이 없으면 아치도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제5부 마지막 대화

이 논리는 코제브의《헤겔 평석입문》에 보이는 저 유명한 비유와 닿아 있다. “금반지에는 구멍이 있는데 이 구멍은 금과 마찬가지로 금반지에게 본질적인 것이다. 금이 없다면 구멍은 반지가 아니다. 그러나 구멍이 없다면 금 또한 반지가 아니다.” 아치와 돌, 금과 구멍은 짝패로 같이 존재해 그 가치가 빛난다. 실재와 비실재 그 우리의 집은 기실 하나로 떠나면 돌아와야만 한다.

어찌 보면 휴가철 여행은 그 누가 있어 강요하는 일방통행 직선의 외길 그 순명을 거스르는 행위일지 모른다. 길든 짧든 궤도를 일탈한 해찰은 ‘오래된 오늘’ 찾기이다. 이런 뜻에서 헝가리의 미학자 게오르크 루카치의 ”길이 끝나자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정언은 지극히 온당하다. 바다로 난 벼룻길이든 백척간두로 난 벼랑길이든 그 휴가를 마치면서 다시 더 큰 길로 재삼 떠나는 것이다.

해마다 휴가철이면 Ch. 보들레르의 현묘한 시「여행」을 되새긴다, 나는. ”참다운 여행가들은 오직 떠나기 위해 / 떠나는 자들. 마음도 가볍게, 기구와 같이, / 주어진 숙명에서 아예 빠져나지 못하면서도, / 영문도 모르고 노상, 자 가자! 고 부르짖는다.“ 이녁이여! 진정 무엇 때문에 어디로 떠나는가?

부디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발길 모은 여행에 축복이 넘쳐라! 주고받는 눈길과 손길의 추억이 아름답고 멋진 꿈길로 안내할 것이니.

* 필자: 김래호 작가,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수료, 전 대전방송(TJB) 보도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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