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수컷의 아름다움, 성선택, 젠더투쟁…진화·자연의 이치
암컷·수컷의 아름다움, 성선택, 젠더투쟁…진화·자연의 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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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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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아름다움의 진화’ 표지

(서울=뉴스1) 이영섭 기자 = 책은 '성선택'이 진화를 설명해주는 또 다른 열쇠임을 웅변하며 진화론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예일대 조류학과 교수인 저자는 성선택이라는 다윈의 잊혀진 이론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복권을 시도한다.

현재 '자연선택'은 진화론의 다른 이름처럼 돼버렸다. 2013년 프린스턴대 졸업식에 참석했던 벤 버냉키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제군들은 이 점을 명심하세요. 신체적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들이 장내 기생충을 많이 갖고 있지 않음을 확인하는 진화적 방법이에요"라고 말했다.

이는 외형적 아름다움이 육체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정직한 신호라는 믿음이다. 이러한 '적응주의' 이론에 따르면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동물의 성선택은 결국 적자생존의 기초한 '자연선택'의 부수적 곁가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저자는 자연의 경이와 아름다움을 자연선택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무런 쓸모가 없는 동물의 아름다움을 선택하는 성선택이 진화의 새로운 추동력임을 강조하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 모든 동물의 역사는 젠더 투쟁의 역사 …성적 자기결정권

동물의 강제교미와 인간의 강간이 막연히 다를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사실 그럴까.

오바마 행정부 당시 오리 생식기 연구가 이뤄졌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어떤 종의 오리는 32센티미터라는 평균적인 암컷의 몸길이를 훌쩍 뛰어넘는, 최장 42센티미터의 길이의 페니스를 자랑한다. 반면 암컷 생식기는 구불구불하고 험난하여 나아가기 어렵다. 이런 구조는 강제교미를 자행하려는 수컷과 이를 막아내려는 암컷의 치열한 경쟁의 결과다.

오리만이 아니다. 침팬지 암컷은 강압적인 우두머리 수컷을 피해 자신이 고른 수컷과 달콤한 밀월여행을 떠나고, 구애행동을 위해 수컷이 무대를 만드는 '바우어 새'의 경우 비상탈출구가 마련되지 않은 무대에는 암컷이 얼씬도 하지 않는다. 이는 '데이트 폭력'을 피하기 위한 암컷의 행동들이다.

이렇게 놀라운 성갈등 양상들을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볼 수 없다. 저자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이 성적 자기 결정권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나름의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 현존 동물들의 신체에는 이런 싸움의 역사가 '진화'라는 형태로 아로새겨져 있다"고 주장한다. 즉 동물 진화사는 젠더 투쟁의 역사라는 얘기다.

◆ 과학으로 뒷받침되는 페니미즘…성적자율성이 낳은 퇴폐적 아름다움

가부장제 수호자들은 페미니즘이 종종 생물학적 차이를 차별로 오인하고 남성의 지위를 끌어내리려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과학적 방법으로 이를 반박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인 보노보와 침팬지의 경우 암수의 몸집 차이가 25~35% 가량 차이가 나지만 인간의 경우 16%에 불과하다. 인간은 또 다른 영장류에 비해 유독 송곳니가 작다. 인간은 '여성의 선택'을 통해 물리적인 강압과 폭력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저자는 이어 성적 자율성이 낳은 놀라운 결론을 얘기한다. "성적 강제와 물리적 억압이 성행하던 시절 '아름다움'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에는 어떠한 실질적인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류, 영장류 등 동물이 성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비로서 아름다움에는 의미가 생겼다"고 주장한다.

강제교미를 할 수 없는 바우어 새는 수컷들끼리 군무를 준비하고 인간 또한 성별을 불문하고 상대 마음을 사로잡고자 아름다운의 기준과 신체 자체를 진화시켜나가고 있다. 저자는 "한 종 안에서 양성의 성적 자율성이 담보될때 배우자 선택의 기준으로 남는 것은 결국 순수한 '아름다움'인 것이다. 생존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퇴폐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역설한다.

◆ 30년 연구 현장에서 쌓아온 저자의 깊은 성찰들

'새 덕후'로 30여년간 현장을 누빈 저자는 실험실에서 구축한 이론을 현장 연구를 통해 공고한 체계로 발전시켰다. 저자는 동물과 새의 생태, 서식지, 구애행태를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사회와 문화, 섹슈얼리티까지 터치한다.

저자는 "남녀간 여러 경쟁들은 결코 여성이 '우월적 지위'를 얻기 위해서 일어났던 싸움이 아니다. 성적 강제와 폭력에 시달리기 쉬웠던 여성이 '평화'를 도모해온 결과가 지금 인간의 신체다. 이는 역사시대 이전부터 내려오는 장구한 정전협정이다"고 주장한다.

◆ 새로운 진화의 원동력, 성선택

저자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강력한 단일이론이나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일신론적 믿음을 배격한다. 자연은 누군가가 짜맞춘 것처럼 완벽하게 하나의 이론으로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진화론의 '자연선택'이 이러한 일신론적 지위를 부당하게 누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찰스 다윈은 저서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통해 성선택 역시 진화의 추동력이라고 주창했지만 지금 성선택은 자연선택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해 있다.

"적응주리라고 하는, 자연의 모든 신비를 기능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맹신만이 남아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자연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은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개념만 가지고는 오롯이 설명해 낼 수 없다."

저자는 이어 "자연에는 쓸모없는 아름다움도 있다. 그렇기에 더욱 찬란하다. 아름다움은 그저 아름다움을 위해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운 자체가 목적이다"고 말한다.

이 책은 출간된 후 미국 현지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았다. 2017년 뉴욕타임스는 올해의 책으로 이 책을 선정했고, 2018년엔 퓰리처상 후보에도 올랐다.

◇ 아름다움의 진화…연애의 주도권을 둘러싼 성 갈등의 자연사 / 리처드 프럼 지음 / 양병찬 옮김 / 동아시아 /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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